본문 바로가기

소설/단편

유머

8/14 삼천포-술 먹는 세미나-에서 했던 이야기에 덧붙이기.



1. 유머의 성립 조건은? 사람을 웃음 짓게 하는 근원 요소는 무엇인가.

 

2.1. 비일상성. 일상의 모습과는 다른 양상이 나타날 때. 그 때 웃음이 터진다.

2.2. 을지로 3가의 OB베어. 가게는 1평 남짓. 대신 가게 앞 도로, 주차장에 테이블을 만들어 두었다. 테이블 수는 서른 개 남짓. 주 연령층은 40-70대로 노가리, 쥐포 등의 안주 가격 또한 이천 원 내외. 둘, 넷씩 앉은 테이블도 많지만 홀로 앉은 사람도 꽤나 있다. 결국 풍경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중장년의 동네 술집.

2.3. 그런데 그 자리를 찾은 나는 이십대. 함께한 사람들도 이십 중반 전후. 우리는 그들의 입장에서 젖내 나는 꼬꼬마. 결국 OB베어의 일상적 모습에서 어긋난다.


 


2.3.1. 여담으로, 젊은이가 중장년층의 장소를 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우리가 OB베어에 오는 것을 신기해하는 사람은 있어도 거부하진 않는다. 나 또한 라이브카페를 드나들 적에 크게 거리낌은 없었다.

2.3.2. 그러나 중장년이 젊은이들의 장소를 가는 것은 어렵다. 탑골공원의 할아버지가 홍대에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 40대 아저씨가 클럽 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

2.3.3. 젊음에는 관대하고, 늙음에는 자애 없다. 이 양상은 이쯤으로 표현 가능할 것 같다.


 


2.4. 다시 비일상성으로 돌아가서. 늙음의 장소에 젊은이들이 침입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비일상은 획득된다.

2.5. 게다가 그 날엔 드레스 코드까지 있었다. 정복. 뭐가 되었든지 정복을 입고 오기로 했다. 그 결과 각자가 나름의 정복을 입고 왔다. 군복, 파리바게트 제복, 교복, 럭비부 피케 셔츠, 세계 바둑대회 유니폼, 클럽 출격 복장st, 상복, 하객 패션.

2.6. 그 모든 정복은 나름의 세계를 대표한다. 본래 있어야 할 장소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장소에서 이탈함으로써, OB베어란 장소에 비일상성을 부여했다. 그 결과 우리는 유머를 느꼈다.

2.7. 그러나 그것은 우리만의 유머일 뿐, 모두의 유머는 아니다. 그 자리의 모두를 웃게 하기에는 부족했다. 이는 비일상성이 유머의 근원이라고 하기엔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2.8. 혹은 우리끼리만 유머를 즐겼던 것일 수도 있다.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을 관객으로 상정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일단 논외로 해두고 2.7의 이야기를 이어나가자면, 비일상성이 아닌 다른 요소를 고려해볼 필요성을 느낀다.

 

3.1. 그것이 세계관의 공유일 수도 있겠다.

3.2. 이를테면 공감이다. 유머는 기본적으로 공감에 기본 한다. 서로가 유머 코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함께 웃을 수 없다. 외국인이 한국의 문화를 보며 ‘왜 웃는지 모르겠어.’하는 것 또한 비슷한 맥락이다. 기본적으로 세계관을 공유해야만 유머가 발생한다.

 

4.1. 정말 그렇다면 슬랩스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슬랩스틱은 논리 없는 폭력이다. 관객은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웃는다. 이유를 댈 수 없다. 그냥 웃기다.

4.2. 즉, 관객과 (유머) 연기자의 세계관은 공유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유머는 발생한다.

4.3. 슬랩스틱에는 세계관의 공유가 아니라 세계관의 충돌이 있다. 일상적 사회 통념과 비일상적 행위간의 적절한 갭. 그 갭이 크면 단순 구타가 되어 불쾌하겠지만, 적정선을 찾는다면 유머가 된다.

4.4. 결국 슬랩스틱은 또다시 비일상성이라는, 앞서 말했듯 한계가 있는 요소로서 설명된다.

 

5. 앞서 말한 요소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비일상성, 세계관의 공유, 세계관의 충돌.

 

6. 그러나 이 요소들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인가. 좀 더 자세히 생각해보자.

6.1. 세계관의 공유와 충돌은 ‘거리 재기’로 표현될 수 있다. 사실 세계관의 완전 공유는 불가능하다. 각자가 살아가는 세계는 모두 다르다. A가 담배를 보면서 식후땡을 생각하고, B는 금연을, C는 담배 찌든 내를 연상하듯, 세계의 모든 것은 각자 다르게 인지된다. 세계관의 공유는 불 완벽한 공유다. 이는 곧 서로 간 (가까운) 거리를 확인하는 것이다. 충돌도 이와 비슷하다. 다만 공유할 때보다 더 먼 거리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유든 충돌이든 서로 간의 거리를 재는 것으로 통합 가능하겠다.

6.2. 그렇다면 슬랩스틱은 왜 유머러스한가. ‘거리 재기’의 면으로 본다면, 분명 거리는 재확인되고 있다. 다만 그 수단이 말이 아닌 폭력이라는 점에 특이점이 있다. 의사소통이 꼭 언어로만 이루어지라는 법은 없다. 언어는 각 언어권마다 단절되며, 더 나아가 생물 종에 의해서도 단절된다. 그렇다면 폭력은? 가장 원초적인 의사소통이다. 폭력에 의한 의사소통(거리 재기)은 그 어느 상황에서도 단절되지 않는다. 그 누구나 이해 가능하다. 말 한마디 안통하고 문화도 다른 외계인이 찾아와도 치고 박고 때리는 것으로 서로의 거리는 확인 가능하다. 이렇게 본다면 슬랩스틱이란 생물의 원초적 행위이며, 원초적 언어라고 할 수 있다.

6.3. 고로 이렇게 정리 가능하다. 슬랩스틱은 원초적 언어를 통한 거리재기다.

6.4. 그렇다면 비일상성도 여기에 덧붙일 수 있다. 원초적 언어로 서로의 거리를 확인한다. 그 결과, 나의 일상(당연함)과 상대의 일상(당연함) 간의 차이를 확인한다. 나의 일상이 상대에겐 비일상 일 수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으니까. 이 차이의 격차가 커진다면 비일상성의 체험이고, 격차가 좁다면 일상성의 재확인이다.

6.5. 이런 면에서 본다면 슬랩스틱에선 세계관의 공유(이유 없는 폭력은 비일상적이라는 관념 A의 공유)와 충돌(일상적 관념이 무너지는 무대와 일상적 관념을 가진 관객 사이의 거리감)이 동시에 일어난다.

6.6. 슬랩스틱의 행위자도 관념 A는 갖고 있다. 세계관의 공유다. 그러나 일부러 부정해 드러낸다. 그 결과 관객과의 거리감이 확보된다. 세계관의 충돌이다. 세계관의 공유와 충돌이 동시에 일어나며, 이것이 바로 거리 재기다.

 

7.1. 슬랩스틱에 한정지어서 유머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7.2. 유머는 행위자와 수용자자의 거리를 재는 것이다. 그 수단은 원초적 언어인 폭력이다.

 

8.1.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수단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거리재기’는 모든 의사소통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난다. 의사소통의 하나인 유머의 근원을 설명하기에는 완전하지 않다. 그렇다면 그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선 보다 첨언이 필요하다.

8.2. 근데 그게 뭔지 나도 모르겠다.

8.3. 염병 좃까.

 

'소설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1024  (0) 2013.10.24
20130906  (0) 2013.09.06
정육점  (0) 2013.07.18
좆집과 거시기  (7) 2013.07.14
사랑의 본질 2  (0) 2013.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