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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단편

존재론적 불안의 타개책으로서의 내러티브-슈퍼스타K

 

벤야민이 주장한 전시가치의 강화는 현대에 더욱 심화되고 있다. 초기 영화가 의도한 상품의 유사 체험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를 견인해온 자본주의는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아 모든 존재자를 자본의 언어로 지각되게끔 만들었다. 인간 또한 예외 없이 파편화된 상품 이미지, 즉 스펙타클로 지각되고, 관계하게 한다. 새로운 매체인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이 이미지를 변용·재생산 하며 스펙타클적 양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과거, 노동(생산)을 통해 사회적 정체성을 획득하던 양상이 현대에는 요원해졌다. 분업 구조 때문이다. 노동과 상품은 분리되며, 생산을 통한 정체성 획득은 불투명하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를 예측한 바 있으며, 이젠 생산이 아닌 소비가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이 시대의 부자유는 빈곤자의 부자유를 의미하며, 이는 곧 존재론적 위기를 뜻한다. 소비가 불가능하다면 정체성도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지속적 소비를 유도하는 스펙타클의 세계 속에서 파편화된 소비를 하며 파편화된 정체성에 기반하며 존재한다. 이것이 현대의 존재론적 위기다. 상품 소비가 갖는 소모성, 일시성, 간접성의 특성은 정체성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상품 이미지의 특성이 자아에게 투영될 뿐, 완벽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 각 매체에서 메가트렌드로 다뤄지는 불안, 일상어가 되어버린 힐링이란 표현은 이 존재론적 불안의 표면화로 해석할 수 있다. 완전 충족되지 않고 연기될 뿐인 정체성의 획득, 그에 따른 위기와 불안감이 시대에 내려앉아 있다. 이 불안은 위협물이 실재하지 않음에도 느끼는 것으로, 과거의 여타 불안과 양상을 달리한다.

이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내러티브다. <슈퍼스타 K>의 인정·투쟁의 내러티브는 감정 이입의 기회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투쟁의 메인 내러티브는 현재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경쟁 논리와 유사하며, 내러티브의 존재물(참가자) 또한 각각의 개인사를 통해 자기 동일시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국민’ 오디션이라는 구호가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노래와 공연이란 스펙타클을 향유하면서도, 감정이입을 통해 정체성 또한 획득한다. 시즌 2 허각의 우승은 나의 우승으로, 경쟁(신자유주의) 속의 성공과 인정으로, 불안 해소와 정체성의 완전한 획득으로 ‘겹쳐진다.’ 정체성 획득의 ‘유사 체험’이다. 나는 나의 불안을 타개해줄 정체성을 욕망하지만 허각이란 매개를 통해 욕망하고, 인정받으며, 충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과정은 ‘유사 체험’인 동시에 ‘유사 충족’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내러티브에 의한 충족은 상품 구매에 의한 기호적·일시적 충족보다 강렬하다. 상대적으로 직접적이기 때문이며, 그에 따라 존재론적 위기는 망각(연기)된다.

하지만 존재론적 불안의 완전 해결이 거의 불가능한 것을 비춰볼 때, <슈퍼스타K>와 같은 내러티브에 의한 충족은 관념적으로 불완전한 동시에 현실적으론 완전하다. 왜냐하면 이 불안은 인간에게만 발생하는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대자연에 비춰보면, 대자연은 문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하게(자연) 존재하는 가운데, 전체이며 하나인 고유의 시간을 갖는다. 신적인 것이다. 인간만이 이 시간을 분절하여 과거·현재·미래란 시간성(주관성)을 갖는다. 과거와 미래를 끌어와 현재를 빚는, 인간만의 존재 방식을 하이데거는 현-존재Da-sein라 지칭한다. ‘그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존재해야 함’이다. 존재함의 방향에 있어 주관성을 세계에 구현하거나, 혹은 더 이상 세계를 ‘인지’하지 않고 ‘인식’하게 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이러한 존재론적 양상이 나타나며, 그에 따른 불안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불안의 타개책 또한 인간에서 찾아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자연에는 없는 인간만의 시간성, 내러티브다. 내러티브는 그것 자체로 비 자연적(인간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내러티브의 불안 타개는 개별자에 따라 달라진다. 개별자마다 충족의 정도 또한 다르며, 완전함의 정도 또한 다르다. 인간 개별자는 각자의 모나드 속에서 주관적 인간성을 발현하기 때문이다. 대자연의 스스로 그러함과 다르게, 인간의 세계는 ‘각자성의 세계’다. 따라서 인간은 각자의 불안을, 각자 해소(망각)하며, 그것의 완전함 또한 각자 결정한다. 그 결과 세계는 믿는 바에 의해 나타난다. 내러티브는 그 세계를 불안이 부재한 세계로 ‘열리게’ 할 힘을 갖고 있다. 그 결과 스펙타클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존재론적 불안은 망각되는 동시에 해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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